파트로클로스, 왜 우리 인간들은 서로 용기를 돋우기 위해 언제나 ‘나는 더 나쁜것도 보았어’ 하고 말하는 것일까?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나쁜 것은 나중에 올 거야. 우리가 시체가 되는 날이 올거야.’

하지만 나는 자네를 이해해. 파트로클로스를 죽이기 위해서는 약간의 포도주로 충분하지 않지. 이제 알겠어. 결국 우리와 비천한 사람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 모두에게 가장 나쁜 일이 있지. 그리고 그 가장 나쁜 일은 마지막에 와. 다른 모든 것 뒤에 오고, 마치 한 줌의 흙처럼 우리의 입을 틀어막지. ‘나는 이것을 보았어. 나는 저런 일을 겪었어’ 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언제나 아름다워. 그런데 바로 가장 힘든 일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오늘 밤 마시는 거야. 어린아이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혹시 생각해 보지 않았나? 파트로클로스, 자네는 소년이었을 때 술을 마셔 보았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거야. 우리가 언제나 함께 놀고 사냥했을 때, 하루는 짧았지만 세월은 전혀 지나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때, 자네는 혹시 죽음이, 자네의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나? 왜냐하면 소년일 때에도 서로 죽일 수 있지만, 죽음이 무엇인지는 모르기 때문이야. 그러다가 갑자기 죽음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오고, 그때부터 어른이 되는 거야. 서로 싸우고 놀고 마시고 초조하게 밤을 보내지. 자네 혹시 술에 취한 소년을 본 적이 있어?

자네는 아직 소년 같아, 파트로클로스.

그러겠네. 하지만 자네에게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훌륭한 전사가 아니야.

그런데 파트로클로스, 자네는 기억 나는 것들이 없나? 자네가 정말로 무엇을 했는지, 자네의 삶은 어떤 것이었는지, 땅과 바다에다 자네에 대해 무엇을 남겼는지 물어보아도, ‘나는 이런 것을 보았어. 나는 이런 것을 했어’ 하고 말한 적이 없잖아? 만약 기억하지 않는다면 나날을 보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테살리아 지방의 누군가가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 이 전쟁에서 동료들이 그곳으로 돌아가게 될 때, 누군가는 그 길들을 지나갈 것이고, 또 누군가는 한때 우리도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분명히 그곳에 있을 다른 소년들과 똑같은 두 소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지금 자라고 있는 소년들도 그것을 알 거야.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보지 못하겠지만, 앞으로 또 태어날 나날이 있어

아닐세, 파트로클로스. 그렇게 많지 않아. 우리가 시체가 되는 날이 올 거야. 우리의 입은 한 줌의 흙으로 틀어막히겠지. 그리고 우리가 보았던 것도 더 이상 모를 거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 소년일 때는 불멸의 존재 같아. 서로 바라보고 함께 웃지. 대가를 치르는 것을 몰라. 노고와 후회를 몰라. 장난삼아 서로 싸우고 죽어서 땅에 쓰러지지. 그러고 나서 웃고 다시 놀이를 하지.

안심하게, 우리는 돌아갈 거야.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함선들이 불타오를 때가 그때일 거야.

왜 그렇게 놀라나? 자네는 더 나쁜 것도 보지 않았나?

서두르지 말게, 파트로클로스 ‘내일’이라는 말은 신들이나 하도록 놔두게. 오로지 신들에게만 과거에 있었던 것이 미래에도 있을 거야.

나는 필멸의 인간들과 불멸의 신들을 위해 마시겠네. 파트로클로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를 위해. 기억 속에 있는 과거에 있었던 것을 위해. 그리고 우리 둘을 위해.

평범한 어느 여인이나 거지보다 많지 않아. 그들도 예전에는 소년이었지.

불 속에서만은 예외지. 자네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지.

하데스가 없었던 시절이 더 좋았어. 그때 우리는 숲과 개울 사이로 갔고, 땀을 씻었지. 우리는 소년이었어. 당시에는 모든 행동, 모든 눈짓이 놀이였어. 우리 자신이 바로 기억이었고, 아무도 그걸 몰랐어. 우리에게 용기가 있었나? 모르겠어. 중요하지 않아. 켄타우로스의 산 위에 여름이 있었고, 겨울이 있었고, 또 모든 삶이 있었다는 것은 알아. 우리는 불멸의 존재였어.

운명은 피할 수 없어. 그리고 나는 내 아들을 보지도 못했어. 데이다메이아도 죽었어. 오, 무엇 때문에 나는 여자들로 둘러싸인 그 섬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하지만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누가 말했나?...... 오, 파트로클로스, 그런데 이런 것이야. 우리는 더 나쁜 것을 보아야 했어.

아직 나의 날이 아니야.

그 물푸레나무를 베어 냈을 때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거기에 남아 있는 빈터를 보고 싶군.

아직 함선들은 불타고 있지 않아.

자네는 정말로 술을 마시는 어린아이로군.

오로지 신들만이 운명을 알고 또 살아가지. 그런데 자네는 운명을 갖고 장난하는군.

아킬레우스, 나는 더 이상 자네를 이해할 수 없어.

최소한 우리 둘 중 하나는 상대방을 위해 기억할 수 있을 거야. 그러기를 바라. 그러면 우리는 운명을 갖고 장난하게 될 거야.

내가 자네와 함께 또 자네처럼 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처음 취한 것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고 싶군. 모르겠어. 기억나지 않아. 언제나 술을 마셨고, 죽음을 몰랐던 것 같아.

그걸 자네 적들에게 물어보게, 아킬레우스.

어쨌든 나는 오늘 밤 자네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네.

아킬레우스, 소년이었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았어. 온종일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했지.

소년일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

우리는 벌써 많은 나날을 보지 않았나?

그런 것은 생각할 필요 없어.

우리는 지금 다른 놀이들을 누리고 있어. 침실과 전리품이지. 그리고 적들. 또 오늘 밤 이렇게 마시는 것. 아킬레우스, 우리 언제 전쟁터로 돌아갈까?

그 정도까지?

나는 초조해. 우리는 전쟁을 끝내려고 여기에 있어. 아마 내일이라도.

하지만 더 나쁜 것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어.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야. 마시게, 아킬레우스. 창과 방패를 위해. 과거에 있었던 것은 미래에도 또 있을 거야. 우리는 다시 위험을 무릅쓸 거야.

자네는 많은 것을 기억하나?

자네는 부자일세, 아킬레우스. 자네에게 부는 내버리는 걸레와 같아. 오로지 자네만이 거지와 같다고 말할 수 있네. 자네는 테네도스 섬을 공격했고, 아마존의 허리띠를 부서뜨렸고, 산에서 곰들과 싸웠네. 다른 어떤 어머니가 아기를 자네처럼 불 속에서 단련시켰나? 자네는 바로 검이고 창이네, 아킬레우스.

그림자가 구름을 뒤따르듯이 그랬지.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처럼 말이야. 아킬레우스, 혹시 언제나 자네도 하데스에 내려와 나를 구해 줄 날이 있을지 모르겠네. 그것도 두고 보아야겠지.

하지만 그 후에 나빠졌지. 위험과 죽음이 왔어. 그리고 우리는 전사가 되었어.

그랬다면 초라한 기억만 가졌겠지, 아킬레우스. 아직도 소년일 거야. 존재하지 않았던 것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겪는 것이 낫지.

나는 내일 전쟁터로 나갈 거야. 자네와 함께.

그렇다면 나 혼자 가겠어. 자네를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 자네 창을 가져가겠네.

전쟁터로 내려오면 자네에게 합당한 빈터를 볼 거야. 수많은 적들, 수많은 나무 둥치들과 함께 말이야.

자네의 정강이받이와 방패를 가져가겠네. 자네는 내 팔 안에 있을 거야. 아무것도 나를 스치지 못할 거야. 장난하는 것처럼 보일 거야.

아킬레우스, 자네는 켄타우로스와 함께 달렸을 때 기억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 그리고 오늘 밤 이상으로 불멸의 존재도 아니였어.

나와 함께 조금 더 마시세. 내일이면 아마 하데스에서 여기에 대해 말할지도 모르지.